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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Analogue: A Hate Story – 왜 이 게임이 대단한가?
    게임 리뷰, 추천 2012. 10. 4. 00:29




     [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Analogue: A Hate Story)]는 캐나다의 여성 레즈비언 작가 [크리스틴 러브(Christine Love)]가 제작한 게임입니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캐나다의 작가가 한국의 남존여비 사상을 다루었다는 사실이 주로 부각되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부분은 남존여비 사상을 통해 무엇을 말하며 어떻게 전달하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측면에 있어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는 확실히 대단한 게임입니다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는 그녀의 전작 [디지털: 어 러브 스토리(Digital: A Love Story)]의 정신적인 속편입니다. [디지털: 어 러브 스토리]에서 플레이어는 PC 통신 클라이언트에 접속한 유저였습니다. PC 통신 클라이언트를 본뜬 게임 속에서 메시지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게임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던 독특한 게임의 구조는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에서 플레이어는 무궁화라는 가상의 우주선 시스템에 접속한 해커가 되어, 우주선에 저장되어 있는 과거의 기록을 읽으며 그 우주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알아가게 됩니다. 해커니 시스템이니 설명만 봐서는 굉장히 복잡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도스(DOS)를 간단하게 만든 것 같은 명령어 입력 화면(오버드라이버 터널)과 그래픽 인터페이스에 미소녀 인공지능까지 갖추어진 홈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오버드라이브 터널과 홈은 각각의 특징을 통해 게임이 목표로 하는 경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주 무대인 홈은 편지글 형식으로 작성된 기록의 집합체인 게임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읽고 검색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으며, 홈에 상주하는 인공지능들은 정지해 있는 글을 다루는 게임이 가지는 정적인 흐름을 깨고 갑작스런 사건이나 감정을 넣어주는 추임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로그 화면과 떨어져 있는 오버드라이브 터널은 상황에 따라 필요한 명령어를 찾거나 입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일종의 퍼즐게임과 같은 요소를 갖추어 게임이 단순해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깊이는 얇지만 서로 긴밀하게 엮여있는 덕분에 매우 자연스럽고 인상적인 경험을 가능케 합니다.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의 이러한 구조가 인상적이며 대단한 이유는 게임 속 플레이어와 현실간의 희미한 경계선이 현대 게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모순인 서술과 상호작용의 충돌을 효과적으로 우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게임의 대부분은 플레이어가 게임이 제공하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뿐이고, 정확한 의미에서 상호작용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오버드라이브 터널에서 명령어를 입력하는 부분뿐이지만, 그 과정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는 인트로와 엔딩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 있는 이와 동인인물 이라는 가상현실을 효과적으로 납득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게임 속에서 홈 화면을 통해 플레이어가 원하는 정보를 선택해서 읽는 과정은 그래픽으로 사건을 서술하는 것과는 달리 플레이어를 관찰자로 만들지 않습니다. 게임의 설정과 배경 그리고 게임에서 하는 행동이 현실의 그것과 일치하기 때문에 게임은 다른 게임에서는 얻을 수 없는 플레이어와 게임사이의 기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이러한 시도는 사실 현실과는 완벽하게 독립되어 있는 세계를 그래픽으로 표현해야 하는 여느 게임과는 달리, 이야기를 구축할 수 있는 글만 있으면 어떠한 구조라도 상관없는 텍스트 기반 게임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현대 게임이 요구하는 기준에는 맞지 않는 우회방법일 뿐이지만 그것이 가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에서 인공지능에 몰입하는 감정과 일반적인 비주얼 노벨 게임의 그것을 비교해 본다면 그 가능성의 일부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글의 앞에 크리스틴 러브라는 작가가 레즈비언이라는 설명을 굳이 붙인 이유는 작가 스스로 그러한 소개를 거부하지 않으며 또 게임의 설명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는 남존여비라는 사상을 통해 사상과 사상의 대립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겉모습만 봐서는 그냥저냥 미소녀나 보고 희죽거리는 게임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게임의 사건과 등장인물의 설명은 편지글과 일기로 작성되어 조각조각 나뉘어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이러한 기록을 읽으며 게임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하나씩 맞추어 나가게 되는데, 잘려진 글들의 배치와 연결이 절묘해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에 닫기까지 손에서 놓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게임이 다소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개인에 따라 남존여비 사상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남존여비 사상이 존재했던 현실의 한국이 아닌, 게임의 배경을 놓고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 할 수 있을 겁니다. 

    게임의 중간 중간 들어있는 미소녀와의 달달한 대화는 게임의 자극적이고 무거운 이야기를 희석시키고 부드러운 연결을 위한 다리 역할을 합니다. 게임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실제 게임이 말하고자 하는 본론은 남존여비가 의미하는 여성 차별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집단의 잔혹함입니다. 더 나아가 이 게임은 지금은 과거의 치부로 취급받는 여성 차별을 통해 사상과 사상의 대립을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게임은 훌륭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으나, 정작 게임에서 큰 핵심이 되는 자극적인 사건에 가려 중요한 메시지는 약하게 느껴지는 것이 단점입니다. 게임에 등장하는 두 명의 인공지능의 차이와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 사상의 차이에 대한 표현이 쉽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정작 주인공과 그녀가 얽힌 사건에서는 제작자가 원한 메시지를 읽기 힘듭니다. 대신 숨어있는 어려운 주제는 접어두고, 미소녀가 등장하는 스릴러로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는 부분에서는 뛰어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는 영어의 언어장벽과 작가 특유의 작문 방식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굉장히 많았으나, 현재는 프로 번역가 김지원님의 훌륭한 한글 번역 덕분에 원문을 읽는 것 이상의 재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해석하기 쉽지 않은 필체를 가진 장문의 매끄러운 번역에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냅니다.

    제작자의 사상과 생각이 강하게 들어갈 수 있는 인디 게임의 특징과 메이저 게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과 참신함, 그리고 수준 높은 게임 번역을 한 번에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가 유일합니다. 게임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에서부터 단순히 미소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잔혹한 이야기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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