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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끝나는데 뭔가 특별한 글 하나 정도는 써야 하지 않을까? 한 일주일 전쯤부터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본래 하고 싶은 말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주제는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론 위주로 쓰려고 하니……. 쓰는 사람도 지치고 읽는 사람도 재미없을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게임을 직접 예로 들며 간단하게 한번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게임이 어떻게 플레이어를 설득시키는지, 그것이 왜 중요한지 말이죠.



1.Undertale(언더테일)


 또 등장했습니다. 제 올해의 게임 [언더테일] 이 게임은 왜 이렇게 자주 언급될까요? 해외의 수많은 평론가(토탈스킷이라거나)와 가마수트라 편집장도 올해 게임의 하나로 꼽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여러 개 꼽아도 괜찮아요. 유명인이니까!) 아직 게임을 접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최대한 게임의 이야기는 밝히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몬스터에게는 설정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설정은 게임의 그래픽, 텍스트, 음악, 장치 등 게임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전달됩니다. 설정이 존재만 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 설정이 플레이어에게 전달되고, 이해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그것을 아주 능숙하게 해냅니다.


그렇다면 왜 이 게임은 몬스터에게 그토록 많은 자원을 쏟을까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음악을 설정하고, 대사를 넣고 참 품이 많이 드는 일인데요? 이유는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의 이야기와 주제는 플레이어가 게임의 몬스터를 이해해야 성립됩니다. 그냥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감정이 움직일 만큼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게임은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감정을 움직이며 플레이어를 게임에 빠져들게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디테일이 사실은 게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정보이자, 게임의 장치로서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절대 사소한 디테일이 아닌 셈이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디테일, 게임에서 중요하지 않은 자투리 정보로서 말하는 디테일은 오히려 게임의 핵심일 때가 많습니다. 단지 우리가 접하는 “일반적인 게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정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중요한 요소들을 남는 여분으로 취급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 게임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게임이면 더더욱 그런 실수를 저지르기 쉽습니다.

저도 이 게임 리뷰를 끝내고 ‘아이고-’싶어서 굳이 또 쓰는 거니까요.




2. 파이날판타지14


 한국에서는 파이날판타지 십사라고 읽습니다. 이거 매번 깨는데 이렇게 읽는 것이 공식이니 어쩌겠습니까. 한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하는 회사가 회사이니만큼, 도끼눈을 뜨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정말 훌륭합니다. 한번 속아도 괜찮을 만큼 훌륭해요. 아, 서비스도 아직은 훌륭합니다. 칭찬해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힘써주세요. 제발. 


파이날판타지14에서는 게임의 날씨를 말하고 싶습니다. 이 게임의 날씨는 집착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눈이 내리고, 비가 오고, 안개가 끼고, 구름이 끼고, 화장하다가 폭풍이 불고, 바람이 잦고, 폭염이 내리쬐고, 눈보라와 폭풍 번개가 치고……. 이 밖에도 몇 가지 더 있는데 정말 미친 것 같습니다. 이런 날씨가 정해진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데, 그걸 구현한 수준이 또 기겁할 수준입니다. 


파이날판타지14에서는 시간에 따라 게임 속 태양이 실제로 움직이고, 그에 따라 배경의 빛과 그림자가 변합니다. 앞서 날씨가 다양하다고 했죠? 변하는 빛과 그림자가 날씨하고 맞물려 전부 상호작용합니다! (/놀람) 이게 맵에 따라 전부 다르므로 엄청나게 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 내는데, 그게 전부 미려하게 구현이 되어 있습니다. 폭설이 내리기 전에 노랗게 주변이 뜨고 안개가 끼는 독특한 날씨를 구현한 정신 나간 게임은 이게 처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게임은 왜 이렇게 날씨에 집착했을까요? 날씨같이 사람들이 별로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은 디테일에 왜 신경을 쓰는 걸까요? 만들기 엄청나게 힘들었을 텐데?


필요하니까요. 


플레이어의 경험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곡괭이질을 하다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아름답다 생각하고, 봇처럼 레벨을 올리다가 노랗게 물들어 가는 노을을 보면서 어머니를 떠올리는 경험을 하는 것. 멍하게 게임이 만들어낸 세계에 빠져들어 있는 순간을 만들어 내는 날씨. 게임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존재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수단으로써 사용한 것이 날씨인 겁니다.


사소한 디테일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디테일이 게임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게임을 특별하게 만들고, 누군가에게 특별한 게임으로 기억되게 만듭니다. 게임에 게임만의 색을 더하는 것이 바로 디테일입니다. 흔한 게임이 도달하는 지점을 넘어서는 게임, 흔히 말하는 차별성. 모든 게임이 그토록 원하는 것이죠.



 오랜 확인을 거쳐 게임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게임을 만드는 척도가 된 “틀”이 게임의 기본이라면 그 결과물에 게임만의 색을 칠하는 것, 플레이어에게 고유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디테일의 몫입니다. 게임이 플레이어를 설득시키고 싶어 하면, 게임은 디테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없어도 되는 자투리가 아닙니다. 단어 뜻 그대로 게임을 플레이어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준비하는 논리가 바로 디테일, 섬세함입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벗어나려 할 때 보충 설명을 해서 붙들어 주고, 엇갈리는 것 같은 장치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결속력이 바로 섬세함입니다.



2016년에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임에서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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