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문제
    게임 컬럼, 정보 2016. 5. 20. 19:02


    어이가 없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감상입니다.


    - 플랫폼과 관계없이 모든 게임물을 민간이 자율 심의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

    - 스팀, 오픈마켓, IPTV등 다양한 플랫폼의 심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 자율등급 분류 권한이 모바일뿐만이 아닌 다른 플랫폼으로 확대되었다


    여러 긍정적인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박주선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의안정보시스템에서 전문을 찾아 읽을 수 있습니다. 

    의안정보 시스템 링크



    1. 무엇을 위한 법인가?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담당하던 게임 심의를 민간사업자로 확대하는 법입니다. 

    기존의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역할은 유지한 상태에서, 정부가 인정한 민간사업자에 자율 심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민간 자율성을 확보하고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해외 게임물의 국내 유통이 등급 분류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 법의 목적입니다.



    2. 무엇이 문제인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 법이 개정 취지와는 달리 민간사업자에게 자율권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법에서는 자체 등급분류를 할 수 있는 사업자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심사 후 선정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도대체 정부에서 심사 후 선정하는 것이 어떻게 민간에 자율권을 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선정 기준 또한 엉망입니다.


    - 일정 금액 이상의 3년간 매출액을 증명할 수 있는 기업


    일단 개인 개발자, 소규모 개발팀은 이번 개정 법안에서 제외됩니다.

    모바일 스토어에 자신의 게임을 올리는 이들 모두 이 법에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매출을 증명할 수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만 자율 심의 권한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건 게임을 문화가 아닌 사업으로서 기업 단위로 다루는 법입니다.


    또한 법에서는 매출만 충족한다면 업종과는 관계없이 자율 심의 권한을 가질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 검토보고 16페이지에 나와 있는 설명입니다.




    이제까지 게임 심의를 정부에서 관리하던 이유로 전문성을 내세우더니, 정작 그 업무를 담당하는 업체는 게임과 굳이 이해관계를 두지 않아도 관계없다고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업의 지나친 확대를 우려하여 공중파 방송사만 제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법에는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과 검증 절차”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길고, 장황하고, 복잡합니다.


    - 등급분류의 적정성에 관한 자문의견을 제시하는 소속 직원이 아닌 2인 이상의 전문가를 위촉할 것


    소속 직원이 아닌 외부인을 2명 고용하여 별도 부서를 신설해야 합니다.

    소속 직원이 아니라는 뜻은 회사에 속해있지 않은 감시인이라는 말입니다. 

    오직 심의를 위해 이런 부담을 지고 싶어 하는 회사가 과연 있을까요?

    게임을 유통하는 회사 또한 이를 따르기에는 부담이 큽니다. 


    - 업무의 수행을 위해 온라인 업무처리 시스템(위원회의 시스템과 연계되는 기능을 포함한다)를 구축할 것


    온라인 업무 시스템을 구축하는 비용은 누가 낼까요? 당연히 사업자겠죠.


    - 등급분류 책임자와 전담 인력은 위원회가 실시하는 교육을 연 4회 이상 받을 것

    - 위원회의 평가를 연 1회 이상 받고 이에 따라 개선조치를 이행할 것

    - 전문가의 활동보고서를 위의 평가 실시 1개월 전에 위원회에 제출할 것


    이렇게까지 자율 심의의 주체를 위원회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집단으로서 보고 있다면 애초에 자율 심의권을 주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주기적으로 교육을 받고, 보고를 올리고 개선조치를 이행해야 하는 집단이라니? 민간 기업이 위원회 산하의 기관이던가요?


    자율 심의를 하느니 그냥 기존대로 위원회가 담당하는 것이 편할 지경입니다. 

    (실제 심의는 위원회와 민간 기관이 담당하나, 너무 복잡하게 꼬여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가의 영역으로서 게임 심의를 다루는 동시에, 아무 사업자나 규모만 되면 뛰어들 수 있게 법을 만들다 보니 이렇게 현실과는 동떨어진 법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문턱을 낮추어 해외의 기업이 민간 자율 심의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법이라고 해도, 유지를 위한 조건이 이렇게 까다로워서는 그 어떤 해외의 기업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게임 업계에 대한 이해가 없는 법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매우 다행스럽게도 이 법은 따르지 않아도 되는 법입니다.


    다음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원안의 주요 내용의 내용입니다.


    나. 국내에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배급하기 전에 위원회 또는 자자체등 분류사업자로부터 등급분류를 받도록 함

    (안 제21조제1항).


    기존에 하던 대로 정부로부터 심의를 받아도 되고, 자율 등급을 받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정작 법안 본문에는 해당 내용이 없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볼 때 그렇게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3. 그럼 문제없네?


    기업의 입장에서는 별 상관없는 법입니다. 

    기존의 법을 요란하게 삭제하고 신설했지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업이 아닌 소규모 개발팀, 개인 개발자들에게 이 법은 재앙입니다.


    현재 법은 오픈마켓, 다시 말해 모바일 마켓은 마켓이 심의를 대신 해주기 때문에 별도로 심의를 받지 않아도 임의로 등급을 매기고 게임을 유통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개인 개발자나 소규모 개발팀들은 모바일 마켓에 게임을 등록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 해당 부분이 삭제되었습니다.




    법에서 정의하는 "위원회를 통한 사전 등급분류가 적절하지 아니한 게임물"에는 모바일 게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부가 쏟아지는 모바일 게임을 일일이 심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율 심의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한 국회의원들은 해당 항목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심의 절차 병목 현상이 해결될 것이니 자율 심의를 통해 심의를 받거나, 위원회를 통해 심의받고 게임을 내라는 것입니다.


    이건 필자의 추측이 아니라 검토보고서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개인 개발자나 소규모 개발팀이 자율 심의를 요구 하는 것은 심의 행정 절차가 불합리하게 까다롭고 높은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심의가 존재하는 시점에서 그들은 게임을 만들어 배포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현재 PC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잘 모르면 그냥 가만히 둬야할꺼 아닙니까?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요?



    4. 어이가 없다.


    결국, 이 법은 대체 뭘 하는 법일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럼 뭘 할 수 있는 법일까요? 최근 기사에서 떠드는 내용을 다시 한 번 봅시다.


    - 플랫폼과 관계없이 모든 게임물을 민간이 자율 심의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


    맞는 말이지만 정확하게는 민간 기업과 비영리 법인만 해당합니다. 개인과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영세 소규모 개발팀들은 이번에도 버려졌습니다. 거기에 복잡하고 불합리한 조건을 두고 있기 때문에 기업과 법인조차 따르기 힘든 법입니다.


    - 스팀, 오픈마켓, IPTV등 다양한 플랫폼의 심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한국에 게임을 내기 위해 별도의 부서를 차리고,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고, 보고를 올리며 회사와 관계없는(그리고 아마도 한국어가 가능한) 외부인을 고용하고 있어야 한다고요? 구글이나 애플이? 벨브가? 참, 퍽이나 하겠네요.


    - 자율등급 분류 권한이 모바일뿐만이 아닌 다른 플랫폼으로 확대되었다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모호한 선정 기준과 복잡한 관리 조항 때문에 자율 등급 분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결국 기존에 모바일에서 나마 자율 등급 분류를 누리던 이들이 권리를 박탈당한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업체나 민간이 힘을 합쳐, 법인을 만들거나 심의만을 위한 사업을 설립하는 것으로 현재 정부 위주의 심의를 민간으로 끌어오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법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럴 거였으면 진작 그럴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이제와 할까요? 안해도 그만이라 별로 신경쓰이지도 않는 법 때문에? 그럴 리가 없죠.


    쓰고 있으니 기운이 쭉쭉 빠집니다. 잘 만들면 게임의 영역을 넓히고 앞으로의 발전을 이끌 수 있을 법이 되었을 텐데, 이런 엉터리 같은 법이 나오고 그것이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퍼지는 걸 보니 그냥 기운이 쭉쭉 빠집니다. 


    이미 이 법은 통과되었습니다.

    그저 별 탈 없기를 빌 뿐입니다.

    댓글

Designed by black7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