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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Dear Esther – 부록
    게임 리뷰, 추천 2012. 2. 22. 07:09

     전에 [Tale of Tales]라는 인디 게임 제작팀이 있었습니다. [길(Path)]이나 [묘지(The Graveyard)]같은 무척 실험적인 게임을 내놓다가, 갑자기 더 이상 게임을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떠난 그런 팀입니다. (진행 중이던 게임을 끝마칠 자금 부족과 함께, 그들의 게임에 대한 일반적인 평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것이 주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한때 (지금은 유행처럼 사라진) “아트 게임”이라 지칭하던 그들의 게임은 분명 일반적인 게임과는 무척 달랐습니다. 일단 게임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플레이어와 게임간의 상호작용을 완벽하게 배제했습니다. 제작진이 의도한 “감정”을 전달함에 있어, 변수가 되는 플레이어의 간섭은 필요치 않았고, 넣는 것 또한 무척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의 게임은 게임 속에 단편적으로 흩어진 단서들을 찾아 끼워 맞추는 다분히 문학적인 재미를 추구했습니다. 게임속의 장치를 통해 플레이어가 반응하고, 게임이 응답하는 것에서 오는 크고 작은 보상에서 오는 재미 대신, 그래픽과 음악을 통한 표현과 그러한 표현으로 구현된 단서를 조합해 풀어나가는 재미. 쉽게 말하면 아트 게임은 게임보다는 영화나 글에 가까운 매체입니다. 예를 들어 게임 속에 춤을 추고 있는 여인과 여인 옆에 떨어진 편지가 있다면, 플레이어는 그것을 보거나 듣는 것을 통해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는 식입니다.
     
    이쯤에서 눈치 채셨겠지만 아트 게임은 모두를 위한 게임이 아닙니다. 아트 게임은 위의 매력을 원하는 사람에게나 어필할 수 있는 아주 마이너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마이너한 인디 게임 바닥에서 조차 묻힐 정도로 마이너합니다.)


     며칠 전 내키는 대로 써 본, [Dear Esther]는 그렇게 사라진 아트 게임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게임이자, 그 장르를 완성시킨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이 게임은 [Tale of Tales]나 기타 비슷한 아트 게임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표현을 위한 미려한 그래픽과 유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의 전달이 바로 그것입니다.

    [Dear Esther]는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이제는 낡은 엔진인 [소스 엔진]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기술적으로는 부족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Dear Esther]의 그래픽은 폴리곤을 깎고 광원을 빗어 만들었다는 표현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해변에서 바람에 날린 모래가 언덕에 쌓여있는 모습이라거나, 작은 골자기 사이를 흐르는 시냇물과 같은 아주 작은 디테일 까지 놓치지 않는가 하면, 폴리곤이 겹치거나 깨지는 아주 사소한 문제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정말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유저의 행동에 반응할 수 있는 융통적인 배경이라기보다, 좋은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빈틈없이 만들어진 영화의 세트가 생각나게 하는 그래픽입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배경위에는 정교하게 짜인 이야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한 남자가 읽어 내려가는 편지, 무척 잘 쓰인 비유와 상징이 가득한 편지는 과거의 실수와 그로서 잃어버린 사랑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아트 게임이 너무 모호한 이야기로 관심 있게 접근한 사람마저 내쳐버리고 말았다면 [Dear Esther]는 이처럼 플레이어가 따라갈 수 있는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토대로 부드럽게 시작하여 강렬하게 끝맺고 있습니다. 편지 속의 단서와 배경에 흩어진 단서를 찾아 추리한다면 무척 깊이 있는 사실들을 추론해 낼 수 있으며, 굳이 골치 아프게 단서를 찾지 않아도, 대략 게임 속 주인공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Dear Esther]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기존 아트 게임의 장점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3D 그래픽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영화 세트 위에서 주연이 되어 각본대로 움직이는 “아트 게임”의 완성판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게임에 사용된 글(편지)이 아주 어려운 수준이라 원어민조차 해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단점 아닌 단점을 빼면, 장르를 관심 있게 지켜본 이라면 장르의 끝을 목격하는 의미에서 한번 즐겨봄직 합니다.


    PS. 게임은 구 소스 엔진으로 개발된 모드와 이번에 개선된 엔진으로 제작된 판매 버전 두 가지가 존재합니다. (물론 판매하고 있는 쪽의 그래픽이 더 좋습니다.) 모드는 소스 엔진으로 제작된 게임이 있다면 이곳에서 무료로 즐기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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