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avy Rain - 독립선언

비디오 게임 역사에 기록될 작품

 "이 시대 비디오 게임의 한계를 실험하는 작품." [헤비 레인(Heavy Rain)]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한마디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과연 그 실험이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실패인가 성공인가…….

 “영화와 같은 게임.” 이는 비디오 게임의 꿈이자 목표였습니다. 유명한 도전을 기억해 보면 [풀 모션 비디오 기반 게임(Full motion video based games)](이하 FMV)가 떠오릅니다. 실제 배우와 세트를 사용하여 실사 영상을 찍고, 이를 이어 붙이는 형태로 게임을 제작하는 방법으로서 한때 어드벤처 게임 시장을 주름잡았습니다. (FMV = 어드벤처라고 떠올릴 정도로) 그러나 높은 제작비용과 더불어 지나친 퍼즐 어드벤처 게임의 남발로 말미암아 사장되어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제작기법입니다.

FMV가 흥하던 시절로부터 십 년이 넘게 흐른 현재 [헤비 레인]은 비디오 게임이 꿈꾸던 영화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력한 하드웨어의 성능과 발전한 비디오 게임 관련 기술을 사용한 작품은 실시간으로 표현되는 3D그래픽과 세밀한 물리엔진으로 현실의 그것에 절대 떨어지지 않는 화면을 보여줍니다. 특히 게임에 등장하는 수많은 3D모델링들이 깨짐이나 겹침 현상을 절대 보이지 않는 섬세함에 정말 감동하였습니다. 이는 영화와 같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뚜렷하게 부분입니다. (게임 속에 특전으로 들어 있는 모션 캡처(Motion capture) 영상을 보면 그것 또한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그야말로 몸을 바친 막노동의 산물.)

 그러나 위의 모든 것들은 결국 “영화와 같은 게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며 결과입니다. 게임의 그래픽이나 연출과 같은 표현은 어디까지나 게임이 플레이어에게로 향하는 일방통행입니다. 그래픽과 연출을 보고 느끼는 즐거움은 영화와 게임이 동등하게 가지고 있는 재미입니다. 게임이 영화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플레이어가 게임을 완성한다는 점입니다. 플레이어의 응답에 게임이 답하는 상호 교류가 바로 게임의 매력이자 생명입니다.

유감스럽게도 [헤비 레인]은 플레이어에게 많은 선택을 주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이는 비단 어드벤처 게임만이 아닌 모든 게임의 한계라고 할 수 있으나, 이야기를 따라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장르의 특징상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단점입니다. 물론 [헤비 레인]은 그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은 이야기의 흐름에 부분적으로나마 영향을 끼침은 물론 버튼을 조합하여 누르는 조작 또한 최대한 게임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짜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헤비 레인]에는 게임이 부족합니다. 단순히 어드벤처 게임 또는 게임의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가 아니라, 더욱 분발할 수 있는 틈이 보인다는 뜻입니다. 플레이어의 조작(이동)은 개선의 여지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변하는 게임의 흐름 또한 더욱 적극적인 형태로 드러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의 선택(또는 실수)으로 인해 특정 인물이 사망할 때, 게임은 이에 무척 소극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플레이어가 내린 큰 선택이자 무척 큰 변화임이 분명하지만, 게임은 달리 변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마치 그 인물이 존재하지 않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흘러갑니다. 게임을 관통하는 시나리오는 훌륭하지만 이에 대해 유저가 개입할 수 없다면 그것은 훌륭한 영화일 뿐입니다.

 결국 [헤비 레인]의 실험은 게임이 영화로부터 독립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어드벤처 게임의 한계를 입증하는 결과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는 실패라기보다 성공 쪽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게임이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가 아니라, 앞으로 게임은 여기에서부터 더욱 발전하는 것이 가능한 겁니다. 비디오 게임을 영화와 동등한 위치로 끌어올린 기념비적인 작품. 그것이 [헤비 레인]에 대한 필자의 평가입니다.